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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심리학이 직접 논리학에 끼어들어야 하는 것

by 뿌찌대디 2022. 3. 1.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논리 또는 논리학과 심리학 사이에 적절한 연관을 확립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그의 공표가 심리학이 직접 논리학에 끼어들어야 하는 것을 <이는 물론 잘못하는 일입니다>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인식론에서 인간 지식이 갖는 형식적 측면들과 경험에 의존하는 측면들 양자 모두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기에 논리학과 심리학 둘 모두는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약하면 발생론적 인식론은 지식의 형성과 그 뜻 모두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다음 용어들로 정식화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써서 인간 마음은 다소 충분치 않은 <다시 말해, 해당 목적들에 쓰기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는 지식인지 그리고 어떤 지식이 더 높은 지식인지에 대한 결정은 말할 것도 없이 형식적이고 규범적인 측면들을 갖고 있습니다. 지식의 어떤 상태가 다른 상태보다 더 우월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심리학자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러한 결정은 논리학자들 또는 주어진 과학의 권역 내 전물 가들 몫입니다. 이를테면 물리학 영역에서 주어진 이론이 다른 이론에 비해 어떤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 지학자들의 몫입니다. 우리의 문제란 심리학의 관점에서 그리고 아울러 발생론적 인식론의 관점에서 지식이 낮은 수준에서 더 노파 독 판단되는 수준으로 어떻게 옮아가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이렇게 옮아가는 전이들의 본성은 사실에 바탕해 논할 문제입니다. 이 전이들에는 이후 내가 보여주겠지만 역사가 관여되거나 또는 심리학이 또는 가끔씩은 생물학이 관여되고 있습니다. 발생론적 인식론의 토대를 이루는 가설은 지식의 논리적 합리적 조직화에서 이룬 진전과 이에 대응하여 형식을 갖춰가는 심리학적 과정들이 나란히 병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설이라고 할 경우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연구할 분야는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고 누가 보아도 명백한 연구 분야는 인간 역사 <역사가 있기 전 사람 속 인간 생각하기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확립시키ㅏ는 것 일 것입니다. 불행히도 Teilhard de Chardin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심리학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심리학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생물 발생학 분야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생물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개체 발생학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이들 나름의 관념들에 대해 개체 발생학 이상으로 더 쉽게 연구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있습니다 논리 지식 수학 지식 물리학 지식 여타 등등의 발달을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우리는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이 책의 뒷 장에서 논할 것들입니다. 이러한 연구 분야에 진입하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좀 더 구처적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논리적 구조들의 발달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겠습니다. 서로 보완하는 것들이지만 생각하기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측면ㄴ들을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는 모양 또는 띰새를 수반하는 측면을 갖고 다른 하나는 조작을 수반하는 측면을 갖습니다. 띰새를 수반하는 측면은 순간적이자 정적인 특징을 취한 상태들에 대한 모방입니다. 인지 영역에서 띰새를 수반하는 기능들은 무엇보다 지각 모방 그리고 <실상 내면화된 모방인> 심상 형성을 들 수 있습니다. 조작을 수반한 사고의 측면은 상태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형식 변환을 다룹니다. 이를테면 조작을 수반하는 사고의 측면은 어떤 대상 또는 상태의 형식을 스스로 변환시키는 행위를 포함하여 또한 본직적으로 형식 변환의 체계들인 지적 조작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우 이들은 다른 행위들과 비교할 수도 거꾸로 나아갈 수도 있으며 다시 말해 행위들은 순방향과 역방향 모두 밞아갈 수 있으며 <이것은 뜻하는 것은 행위 A의 결과들이 또 다른 행위 b로 인해 제거될 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동일성 조작을 야기하는 행위 B를 수반한 행위 A는 변치 않는 상태를 남긴다> 내면화될 수 있기도 하다 행위들은 표상 즉 다시 떠오름을 경유해서 밞아나갈 수는 있지만 실제로 드러난 행동을 경유해서는 밞아나갈 이행될 수 없습니다. 띰새를 수반하는 외관들은 언제나 조작을 수반하는 측면들보다 더 낮은 수준 또는 위치에 자리 잡게 됩니다. 상태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오로지 일정한 형식 변환들의 결과로써 또는 그 밖에 다른 형식 변환들의 출발점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을 뿐입니다. 달리 말해 내 생각하기 방식으로 사고의 본질을 이루는 측면은 조작을 수반하는 사고의 측면이지 띰새를 수반하는 사고의 측면이 아닙니다. 이 같은 관념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인간 지식이란 본질적으로 능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다는 것은 실재를 형식 변환들로 조성된 체계에 동화시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어떤 특정 상태가 어떻게 생겨 났는지 이해할 목적으로 실재의 형식 또는 구조 혹은 그 외양을 바꿔보는 것 즉 실재를 변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힘입어 나는 나 자신이 지식을 실재에 대한 모사 수동적 모사로 보는 견해에 대립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관념은 순환 논법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모사하고 있는 모델을 알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지식 이론에 따르면 그 모델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 모델에 대해 우리가 모사한 것이 그 모델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 결코 알 수 없을 순환 고리에 우리가 사로잡힐 그때 혹은 그날까지> 그것을 모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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